ㆍ상세내용
우리의 삶을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괴물과 맞붙어 싸우려면, 그 끝없는 싸움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김지명의 가면 뒤에는 또 다른 가면이 아니라, 민낯의 생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가면이 벗겨진 민낯은 갈수록 커져 가는 괴물 앞에서 “모두 털려 그늘”(「사막 정원」)조차 없을 정도로 당혹스럽고 초라하다. 아직은 민낯으로 세계와 마주칠 자신이 없다. 비록 가면을 통해서이지만 집요하게 세계와의 만남을 시도한다.
김지명 시집 『쇼펜하우어 필경사』. 김지명 시의 언어들은 사물을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웅성거리면서, 잘 보이지 않는 회전을 하면서, 사물에 착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니 착지가 아니라 아주 살며시 사물을 스쳐 지나가면서, 사물들 위로 튀어 오르면서, 알 수 없는 어떤 곳을 떠돈다. 때로는...